모두가 용의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1934년 발표한 동명의 추리소설을 시드니 루멧(2011년 사망)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 만에 영화로 만들었고 그로부터 또 50년이 지났다. 영화는 오늘까지도 가장 흥미진진한 몰입감 최고의 탐정 추리극으로 기억되고 있다. 1973년 알 파치노 주연의 ‘세르피코’를 발표, 흥행 감독으로 떠오른 루멧은 3번에 걸쳐 작업을 함께 한 숀 코너리에게 출연을 제의했고 이후 앨버트 피니, 잉그리드 버그먼, 앤서니 퍼킨스, 로렌 바콜, 리처드 위그마크, 존 길구드, 재클린 비셋, 베네사 레드그레이브 등 당시의 명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러나 루멧은 독일의 전설적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캐스팅하는 데는 실패했다. 크리스티의 대표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은 셜록 홈스에 필적하는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Hercule Poirot)가 등장하는 8번째 시리즈이다. 크리스티의 소설들은 단순히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사회적 메시지를 함축한다. 루멧은 출중한 외모를 지닌 상류층 인물들을 등장시켜 지적 유희를 즐기는 크리스티의 작가적 성향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온다. 의표를 찌르는 예측 불가의 반전,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등 크리스티의 특성들이 영화에서도 재연된다. ‘나일강의 죽음’, ‘백주의 악마’ 등 크리스티의 여러 작품이 이미 영화화됐지만, 이 영화만큼 완성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없다. 이전 영화들에 불만이 많았던 크리스티도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했다. 1975년 4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총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버그먼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피니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더스틴 호프만(레니), 알 파치노(대부 2), 잭 니컬슨(차이나타운)과 경합을 벌였지만 정작 남우주연상은 ‘해리와 톤토’에서 열연한 아트 카니에게 돌아갔다. 크리스티는 실제 일어났던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 유괴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무대를 열차의 객실로 옮기고 그 안에서 벨기에 출신의 명탐정 푸아로가 범인을 찾아내는 플롯을 구상했다. 폭설로 인하여 발칸 반도 부근의 철로가 막힌 사이 노신사 사무엘 에드워드 래칫(리처드 위드마크)이 칼로 열두 군데가 찔린 상태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시리아 주둔 프랑스군 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앨버트 피니)는 유고슬라비아 경찰이 올 때까지 승객 13명을 잠정적 용의자로 보고 차례로 심문을 시작한다. 한 사람의 혐의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 다른 용의자가 나타나 모호하게 혐의에서 풀려난다. 13명 전원이 알리바이를 입증한다. 푸아로는 외부에서 침입했을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살해당한 래칫이 유명 파일럿 존 암스트롱의 딸을 유괴 살인한 후 도주, 신분을 세탁한 란프랑코 카세티였고, 승객 13명이 모두 암스트롱가와 연관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푸아로는 승객들의 증언을 통해 예상치 못한 범인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러나 당초 자신이 말 한대로 외부 침입자의 소행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13명의 승객들 모두 암스트롱의 복수를 위해 라쳇을 죽인 범인(들)이었다. 퍼즐은 풀리지만 추리극은 미스터리로 막을 내린다. 화려한 조연진 모두 모자이크 그림처럼 각자의 역을 충실하게 연기했지만 영화가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예측불허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피니의 연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원작 소설에서의 푸아로는 영화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캐릭터다. 하지만 약간의 각색과 더불어 유머러스하게 묘사된 영화에서의 푸아로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사회에 참석, 영화를 관람한 작가 자신도 푸아로를 연기한 피니의 연기에 이례적인 찬사를 보냈다. 시사회는 크리스티가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인 마지막 행사였다. 4개월 후, 그녀는 85세를 일기로 평화롭게 숨을 거둔다. 김정 영화평론가용의자 크리스티 애거사 크리스티 정작 남우주연상 남우주연상 후보